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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가맨3]양준1이 자신온다고? !!
    카테고리 없음 2020. 2. 2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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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슈가맨 예고에서 잠시 나쁘지 않았던 영상만 보았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준 하나를 예상하고 있었어요.뭐... 제가 봐도 양준하나가 제일 유력한 것 같아요첫째, 양준하나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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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로 인해 지드래곤과 비슷하게 유명해졌고, 지역에서 의외로 젊은 세대에도 재평가 받아 인지도가 높아진 경우인데, 사실 활동 당시에는 그리 대단한 최근의 유행을 한 가수는 아니었습니다.당시 가요톱텐이 본인 여러분의 요즘 유행 같은 지상파 sound 악방송을 열렬히 보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 본인이 아는 특정 마니아층에만 화제가 돼 있어 대중적인 최근의 유행을 누린 가수는 아니었어요.​ 내가 양쥬은쵸쯔을 아내 sound, 본건 첫 99쵸쯔뇨은이다.서태지가 등장하는 첫 해 전이었어요.특이하게도 제가 아내 sound 양준 최초를 본 건 sound 악방송이 아니라 당시 예능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최초예요첫 번째 밤 오프닝 때였어요.근데 놀랍게도 제가 당시 봤던 그 영상이 유튜브에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l8VYlZJ0CXc


    최근 유튜브의 활성화를 MBC가 올해 7월 올린 영상이지만 당장 이 영상이 내가 언급한 28년 전 쵸소리우에 양 준 1을 본 즉시 그 무대입니다.노래의 제목은 리베카. ​ 이 영상이 방영된 날짜를 보면 1991년 4월 281네요.나는 약 1991년 여름경에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조금 빨리 4월이었군요. ​ 1991년...오래 전이네요.이게 얼마나 자신있냐면요. 저는 삼성 라이온즈 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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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잉룸 삼성 팬 30년째라, 잘난 척해선 제가 삼성 팬 2년째에 불과하던 시절이니 그 삼성 감독이 김성근 그 해 고졸 투수로 입단한 신인 선수가 최근 삼성의 신조차-감독 자리에 오른 호노레·삼영 감독입니다.


    양 준 1은 1969년 8월 19같이 유사한 이름의 야구 선수 양준혁과 동갑입니다.대한민국 그와잉이는 올해 51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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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시하 나 재미 있는 것은 최근의 닮은 꼴로 불리는 지 드래곤은 생애 1(8월 181)이 하루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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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쵸소리리베카로 데뷔한 그 때 양 중 하나의 나는 23세에서 올해 로켓 펀치의 쥬리라고 생각합니다. ​, 대개 슈 카멩이 1990년대 중후반 만약은 2000년대 중반까지 활동한 가수들을 섭외했지만, 지난 최 영재도 그렇고 이번의 양 준 하나처럼 1990년대 초의 가수를 섭외하는 경우는 좀 드물게는 있을 것이다.하긴 저는 1990년대 초반은 물론 1980년대 후반까지 파리 통쵸은도카바ー이 되므로 상관 없지만요.저는 오히려 환영입니다. ​ 2. 가요계의 이단자 양 준하나 ​ 그럼 이제부터 잡설은 집어치우고 본격적으로 양 준 직접 대해서 이야기하고 보겠습니다.이미 언급했지만 양준하나는 당시 그렇게 큰 트렌드를 누렸던 가수가 아니었어요.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정도?​ https://www.youtube.com/watch?v=x6i90qm8Mpo


    다만 당시로서는 아주 독특한 모습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당시 양준일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팩트는 남긴 가수에요.당시 제가 양준일을 보면서 느낀 것은 상당히 느끼한 중성적인 이미지의 가수였어요.​ https://blog.naver.com/nwowolf/22개 653387하나 24


    제가 예전에 한번 국한대중가요사를 줄거리면서, 당시 국한대중가요가 Japan 뮤직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미국 뮤직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 계기가 서태지라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그런데 양준은 서태지보다 첫 해 더 첫 사진으로 등장해 미국식 음악을 선보인 선구자였습니다.하지만 당시 Japan의 시티팝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국한식 발라드, Japan 연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트로트만 대중가요로 인정받으며 유행하던 시절이라 다소 생소한 스타 최초의 양준 첫 뮤직은 철저히 외면당한 게 사실입니다.다만 평소 외국 팝 음악을 즐겨 듣던 당시 젊은 세대 정도가 양준의 첫 음악을 그 자신이 조금 이해하는 정도였습니다.하지만 스토리입니다.당시 양준의 첫 스토리에서도 이런 미국 스타 최초의 뉴저지 스윙 뮤직을 하고 있는 가수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NRNWKp2Ss8


    ​ 바로 SM 1호 가수 현진영입니다. ​ 당시 현진영이 부른 슬픈 마네킹이 미국의 알 엔비와 힙합을 섞은 뉴지에크스잉그스타ー 1소 music을 하던 정말 몇 안 되는 가수였습니다.다만 양 준 1과 차이가 있으면 현진영은 데힝 민국식 뉴지에크스잉그다면 양 준 1은 정통 미국식 뉴지에크스잉그에 가까웠다는 것. ​ 어쨌든 현진영과 양 중 1이 미국식 히프하프소 music의 선구자였다면 바로 그 뒤(뒤)를 이어 계승하고 대중화시키고 버린 것이 서태지와 듀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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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슬픈 마네킹의 영상을 보면 현진영의 옆에서 춤을 추는 남자 둘이 보이는데 그때 현진영은 솔로 가수였으나, 이렇게 무대에 설때는 현진영과 와와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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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하여 이때 현진영에서 춤추던 두 남자 와와는 2년 담장 듀스가 됩니다. ​ 2. 양 준 1의 두번째 도전 카봉잉 타라마 츠바사 ​ https://www.youtube.com/watch?v=hrEHW6hBpIw


    이 움액눙 하나 992년 발표되면서 하나 993년 초까지 활동하 슴니다.이때는 이미 서울·손지가 등장하고 랩을 대중화로 이끈 시기였으며, 형·진영도 랩을 장착한 ' 어두운 기억 속의 당신의 ' 대히트하면서 랩이 들어간 춤'sound음악'이 주류로 옮긴 때라 양· 준하나 아내'sound'가 등장한 리베카 시대에 비하면 그렇게 파격적인 느낌이 적어졌습니다"아무튼 사람 다라 마파사를 마지막으로 양· 준 하나는 잠시 대중의 머릿속에서 사라졌습니다. ​ 3.V2가 양 준하년이다. 고?​ https://www.youtube.com/watch?v=0i하나 7e3M25G8


    ​ 그렇게 1993년을 끝으로 사라진 양 준하년 다시 한국 대중들 앞에 선것은 2001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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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 V2를 양 중 하나의 예명으로 생각하지만 V2는 양 준하를 포함한 여성 멤버 두 사람을 포함한 프로젝트 그룹 이름에서 그 당시 양 준하년 쓰던 예명은 자이라고 따로 있었습니다. ​ 어쨌든 V2가 처음 등장한 그 당시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신인 가수가 데뷔했다고 생각했어, V2의 남성 구성원이 양 준하년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그도 그럴 것이 외모만 봐도 짧은 머리모양 하나에 약간 벌크업 된 몸매, 선글라스로 완전히 가린 얼굴 등 그 사람이 설마 그 외모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눈치 빠르고 집요하기로 소문 난 한정의 연예 브키쟈들이 그 V2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했고 몇달 담 V2의 멤버 자이의 정체는 양 준하년이라는 기사가 폭발하고 나 옵니다.그렇게 자신의 정체를 들킨 양준하나는 이때부터 얼굴을 가리고 있던 선글라스를 내팽개치고 이렇게 당당하게 맨얼굴로 무대에 섭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wG2h5hs8RU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도 놀라워하고, 두 사람이 동일 인물임을 추적해 마침내 정체를 밝혀내는 순간 당시 연예부의 기자들도 대단합니다.어쨌든, 이때 부른 판타지라는 음악은 전에 선보인 양준일 시대의 SOnd 악스타일과 비교해서 더욱 박진감 있고 빠른 소트의 SOnd 편안했지만, 아쉽게도 이 음악 또한 그다지 크게 히트하지 않았습니다.다만, 클럽에서는 꽤 유명한 음악이었고 특히 음악 가사 중 빨래를 걸어야 합니다"이라며" 빠른 열차에 타고 떠난 "이라는 너무 신기하고 재미 있는 가사로 유명했어요. ​ 3. 연예에서 보여진 양 준 이루 ​ https://www.youtube.com/watch?v=RZpPRvOlcV4&t=30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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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양준일의 모습을 보면 재미교포라는 한계 때문에 한국말은 너무 못했어요.말 듣는 것도 서툴었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좀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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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는 1993년 당시의 모습이지만, 가운데가 신동엽, 오른쪽이 김 우오은쥬은, 왼쪽이 양 준하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aMLkVzHiZbE&t=169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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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8년의 세월이 흘렀다 V2시대에도 별반 다르지 않앗슴니다.국어를 말하는데 꽤 애를 먹는 모습을 보였습니다.이야기는 이번 주 양준 하나 슈가맨에 출연해도 여전히 국어는 서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소리도 나옵니다.내가 아는 한 양 준하는 은 V2의 활동을 마치고 한정에 체류한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믹크에 와서 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4. 양 기준에 관한 몇몇 요그 다음 ​ ● 리베카 표절 논란 ​ 그 그때 활동한 가수들이 그렇듯이 양 준하는 나도 표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옷슴니다.데뷔곡 '리베카'도 표절 논란이 꽤 있었던 곡이었거든요.​ https://www.youtube.com/watch?v=IVF0zcqr9Dg&feature=emb_title


    첫 989년에 나 온 자넷 잭슨의 Miss You Much의 전주와 비트가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노래의 원곡은 1987년에 발표된 이명호 전원의 헤어진 이오 쯔슴니다. 정말 그래서 이 노래는 이성만 작사, 이보 무히 작곡, 이보 무히 편곡의 노래인데 표절이라는보다는 원래 우리 나라곡을 리메이크한 것에 가깝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정말 문재는 ​ https://www.youtube.com/watch?v=v5HuK6u1eJw&feature=emb_title


    일 984년에 발표된 프린스의 Take Me with U와 선율이 비슷했습니다라는 것입니다.다만 아랫사람들에게 양준일을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책임이 있다면 모든 사람의 이별과 리베카를 작곡한 이범희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한 IOK0OyrZU


    이렇게 해서 이것은 토요초는 토요초는 즐거울 때의 영상으로 리베카를 당시 사회자였던 이덕화로 바꿔 부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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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를 부르는 양 준 1이 나쁘지 않고 그 노래에 반응하는 이독화의 모습이 인상적이네요.그래서 이날 방송은 이덕화의 마지막 토토즐 방송이었고, 다음 이덕화는 그해 개대한민국 SBS로 이적해 쇼 서울 MC를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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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어른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는 이유로 출연정지 처분을 받았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방송국에서 리베카를 이덕화로 재밌게 개사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 양 준 1방송 중단 사건(feat)씨, 윤·정신 씨)​ 그런데 양 준 1이 실제 방송 정지를 먹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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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바로 1993년 4월이며 그 때 SBS라디오의 기쁜 한국의 젊은 날의 사회자였던 윤종신과 고정 게스트였던 양 준 1것처럼 라디오에 부적절한 언어를 사용했습니다.는 사유에 3개월 출연 정지 처분을 받은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윤종신과 양 중 1은 같은 1969년생 동갑내기입니다 당신이다.​ ● 철과 미국 어린이 걸으며 사랑 ​ https://www.youtube.com/watch?v=_2m4ecbOF70


    그 때문에 양 준 일본은 서태지, 이현도처럼 큰 족적을 남길 뿐은 아니었지만 철과 미애의 2번째 걸으며 사랑을 작곡하고 프로듀싱 한 적이 있습니다...​ 5.2한세기 들어 재평가되는 양 준 이루 ​ 최근에 보면 유튜브를 한 카웅데우에 양 준 일본의 과거 영상을 그리 어렵지 않다 보면 구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시대를 이미 지났던 가수였다고 자주 말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게 맞아요.다만 과거 양준일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대중적인 유행도 유행이었는데 좀 뭐라고 하죠?양준일에 대한 평판 자체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뭐, 나는 당시 나이도 어렸고, 그 당시와 최근 뭔가 바뀐 것 괜찮아 하는 취향 때문에 당시 양 준 일본을 봐도 보통 이런 특이한 가수도 존재하는구나 하는 정도였지만 당시 기성 세대의 30~40대가 봤을 때는 해사하다는 좌음 가 많았고, 심지어 게이라는 소문까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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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1991년 당시 유행하던 music인데 최근에는 30~40대도 아이돌 소리액을 듣기만 하는 데, 귀가 열리고 있지만 당시 30~40대는 아니였습니다.당시 10~20대는 잠자코 발라드다, 30~40대는 잠자코 트로트만 주로 듣던 시대입니다.물론 박남정, 김완선, 소방차 같은 댄스뮤직을 기반으로 한 가수도 있었지만 주류가 아니라 그것도 단일 아이돌 쏘리액스터 하나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습니다.그래서 당시로서는 굉장히 생소한 미국식 뉴잭스윙 음악을 하는 양준하나는 동시대에서 활동했던 기존 가수들과는 뭔가 동떨어진, 혼자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노는 가수 같은 느낌이 강하긴 했습니다.하지만 그것도 리베카까지의 이야기에서 서태지 등장 이후는 특별해 보이지 않았던 느낌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그리고 이제 얘기했듯이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는 건 양준하나라는 인물 자체가 뭔가 사고를 치고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외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외모 때문에 생긴 오해가 대부분입니다.요즘 기준으로는 양준하나 지드래곤을 닮은 부드럽고 세련된 이미지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당시에는 뭔가 건방지고 느끼하고 남자답지 않은 보통 이상한 아이로 대중들에게 알려졌던 게 사실입니다.어찌 보면 소리악적으로도 당시 주류 소리악과는 거리가 멀었고, 외모부터 나쁘지 않은 이미지도 당시 이목구비가 뚜렷한 잘생긴 남자연예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어요.나도 되돌아 소견하면 양 준 1의 시대를 좀 나쁘지 않았던 것은 사실 같아요 다만 당시는 나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양・쥬은하나을 보통 미국에서 온 이상한 사람 취급될 정도로 그의 목소리 사이의 스타 한명도 나쁘지 않고 외모를 받아도 그릇은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래서 당시 30~40대가 현재의 60~70대예요. ​, 당시 10대였던 나도 양 준하를 보고뭐 저런 히앙한 사람이 있프지앙아헷을 정도이지만, 당시 트로트를 주로 들었던 30~40대가 양 준하 낫을 봤을 때는 어땠나요?당시 기성 세대는 최근 30~40대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꼰대를 느꼈습니다.IMF 외환위기(구제금융) 때 국민이 절망에 빠져 있는데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가요톱텐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요즘 소견이라고 하면 요즘 세대는 세대끼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당시 기성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은 정말 머리에 무엇이 들어왔는지 오함마로 머리를 쪼개 후쿠시마 앞바다에 던져 고려장으로 만들어 버려야 할 수준이었습니다.즈그가 얼토당토않은 것 같아 경제 얘기 꺼놓고 애。은 음악 프로그램에 분풀이를 하고 있는가. 당시 저런 양반들이 자유 분방한 스타 한명의 낯선 소리 악을 하양・쥬은 한명을 봤으니 얼마나 괜찮은 예절이 없고 남자 답지 않은 것 같아 불쾌했지? ​ 뭐 그 당시 나를 비롯한 대중들은 당싱무도 시대를 이제 간 양모 준하 낫을 끝내고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현재의 세대와 그 시대의 양 준하잘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는제는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게 뭔가 매우 재미 있는 하나 같습니다.​ 내가 만약 타이 다머 신을 타고 28년 전에 가서 당시 방송 관계자들을 보​"그 양 준하년이라는 가수는 28년 후 미래의 사람들에게 시대를 이미 나쁘지 않아 간 선구자로 인정 받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그랬더니 쟤가 처음 타봤어요.머신을 타고 왔다고 할 때부터 미친 새끼의 것을 알았지만, 지금은 그 양 준 1이가 미래의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가수라고 헛소리를 하네.야! 미래의 사람들은 눈이 없고 귀가 없나?당신 거짓말 아니라 정신 병원에 가?라고 협박 당한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정도로 양 중 1라는 가수는 끝까지 주류가 되지 않은 뭔가 낯선 가요계의 이단자 느낌이 강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I6-vTLib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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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이는 하나 99한살 그 당시 죠무소움의 행진에서 김완선과 함께 비입니다 재즈 공연을 하고 양준하나의모습입니다.요즘 같으면 걸그룹 멤버인 누구 곁에 둬도 좋지만 저 그 당시에는 양준하나와 함께 음악까지 추고 춤까지 추는 여자가수는 정말 김완선밖에 없어요.사실 양준하나가 활동한 걸 전혀 못 본 젊은 세대들이 유튜브를 통해서 혹시 인터넷을 통해서 화제가 되는 것 자체가 저 개인적으로도 꽤 흥미롭네요. 아무튼 저도 하나 8년만에 양준하나를 볼 수 있을지 모르다니... 상당히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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